결혼과 가정 - 훈육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Marriage and the Family - The Divine Design of Discipline

 존 데니슨(John Dennison)


 

 


결혼과 가정 시리즈는 이제 가정에서의 훈육(징계)이라고 하는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걸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시간과 정성과 인내와 기술을 요합니다. 따라서 화가는 우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개인적인 성공담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이 글은 최고의 예술가이시며, 모든 아버지 가운데 최고의 아버지이신, 하늘의 하나님이 행하신 훈육에 대한 연구서입니다.
성경에서 훈육과 징계를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사례는 에덴 동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훈육하셨습니다.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자녀와 같이 "양육"하셨습니다(신 1:31, 렘 31:9). 히브리서 12장에 의하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하심과 변치 않는 원칙으로써 여전히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과의 영원한 관계를 모델로 해서, 우리에게 지상의 인간관계를 주셨습니다(엡 3;14-15). 우리가 하늘 아버지를 주목하여 바라볼 때, 격려와 도전을 받게 될 줄로 압니다.


목적: 왜 징계해야 하는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징계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적인 징계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수단이 아닙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날이 서늘할 때에" 찾아 오셔서 아담과 하와를 대면하여 죄 문제를 처리하셨습니다. 따라서 징계는 온유하고, 분노가 없이 제어된 상황에서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징계할 때, 이웃이나, 가족이나, 혹은 교회의 그 누구와 비교하면서 징계해서는 안됩니다. 징계는 자녀에게 유익이 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자아나 체면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징계에 대한 일곱 가지 동기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행한 징계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징계는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허락하고 있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자녀를 징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지혜자는 잠언에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잠 23:13)고 기록했습니다. 신약성경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징계의 본으로 시작하며 또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고에 순종하고 또한 그분의 본을 따라, 우리도 반드시 징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징계는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새로이 부모가 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기가 전혀 울지도 않고, 따라서 "안돼"라는 말을 전혀 할 필요도 없이, 다만 서로 잘 협력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장에서 반역적인 의지를 가진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모든 자녀들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나니"(잠 22:15)라는 구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모습을 보고자 한다면 현금 출납기를 놓아두거나, 손님들이 모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자녀들은 내적인 자기 통제를 개발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외적인 통제를 필요로 합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도, 인간의 본성은 일종의 제한과 율법을 필요로 했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징계의 원칙을 사용하셨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징계가 필요하겠습니까!

세 번째로, 징계는 자녀를 위한 참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2)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았는데, 이는 아담으로 하여금 죄악된 상태에서 영원히 살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징계는 자녀의 성품을 형성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항상 자기 자녀를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십니다(히 12:10-11).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잠 29:15)이라는 구절이 원칙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징계(chastening)에 해당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 가운데 하나는 종종 "훈계(instruct)"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징계는 자녀를 훈련하고, 성품을 형성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징계는 교훈적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엡 3:14-15). 오늘날 아버지들은 가정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위치 가운데 있습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녀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여섯 번째로, 징계는 영원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자녀들로 하여금 영원을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도록 해줍니다. 솔로몬은 "그를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 23:14)고 기록했습니다. 성경에서 회초리 또는 채찍은 다스리는 권위에 대한 상징입니다. 아마도 잠언에서 말하고 있는 채찍은 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있었던 참된 징계는 즉각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구원을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양심을 징계를 통해 일깨우고, 또한 계발하는 일은 성령께서 죄에 대한 자각을 일으킬 수 있는 기초를 놓는 중요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징계는 공동체를 위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책임과 권위를 존중하도록 하는 일은 이웃과의 관계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또는 교회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자녀가 어린 동안 근실히 행한 부모의 징계는 즉각적으로 가정에서 그 효과를 나타낼 것이며, 결국에서는 교회와, 그리고 마침내는 그 영혼에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게 할 것입니다.


실천: 어떻게 징계할 것인가?

다양한 방법으로 징계하라.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책임과 성(性) 차이와 그리고 경험에 따라 다른 처벌을 내리셨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징계할 것인가에 대해 민감히 반응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자녀를 위한 최선의 방책을 찾아보는 것이며, 이에는 그러한 범죄를 하게된 배경이나 환경, 그리고 범죄 행위의 경중이 필수적인 고려 사항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양심이 자신들을 "판단"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죄책감은 그 자체로 징계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능숙하게 질문을 사용하심으로써(창 3:9,11,13), 죄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과 자백을 이끌어내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또한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있는 특권을 제하심으로써 징계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동산에서 내어보내셨던 것입니다(창 3:23). 가정에서 누리고 있는 특권들을 제하거나 보류하는 것은 책임을 일깨우며, 권위를 인식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책임을 더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힘든 수고를 통해서 먹을 것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 3:17-19). 가정에서 일의 일부를 합리적이고 합당하게 분담시키거나 맡기는 것은 건강하고 성경적인 징계의 효과를 촉진시켜 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징계의 한 방편으로 고통과 슬픔을 사용하셨습니다. 여자에게는 해산하는 수고를, 남자에게는 육체적인 노동을 주셨습니다. 육체의 체벌은 성경적으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처벌의 한 형태입니다. 자녀를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천하거나 잔혹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담긴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회초리가 남용될 때, 얼마나 위험하며 또한 죄악된 것인지 잘 인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회초리 사용을 등한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식을 소홀히 하는 것이며, 또한 망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체벌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지만, "때늦은 체벌"이나 또는 "체벌로 위협하거나 벼르는 것"은 다 적절한 대안이 되질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격노케 하거나 낙심시키는 일을 피하고(골 3:21), 교양(훈련)과 훈계(징계)로 양육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징계가 그 받는 당사자에게 "슬퍼 보"(히 12:11)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W. E. 바인(Vine)은 여기서 '슬퍼 보인다'는 의미가 '마음 혹은 육체의 고통'의 뜻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징계와 훈계에 해당하는 단어들은 문자적으로 "세게 때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조심스럽고 잘 조절된 체벌은 자녀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징계하라. 지속성은 성공적인 징계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우선 경고를 하셨고, 범죄 사실을 대면하셨으며, 그 결과를 설명하셨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대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잠언 13장 24절에서 "근실히"라는 단어는 적절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한다는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회피하고 장기적으로 방치하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의지를 가진 채 자라난 아이들은 반드시 문제를 초래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으로 징계하라. 아버지의 역할에서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 피조물에 대한 헌신은 그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들이 받을 형벌에 대해 선언하신 후,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달래기 위한 방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준비: 더욱 효과적으로 징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창세기 3장은 최초의 징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 장에서 이미 살펴본 세부적인 사항들 속에는 효과적인 징계를 하는데 필요한 다섯 가지 필수사항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대화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타락 이전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계명을 주셨고, 그것을 어겼을 때 겪게 될 결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형벌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3번 명령하시고, 11번 말씀하시고, 6번 그들을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화에 있어서 그 길이, 어조, 그리고 주제에 있어서의 다양성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대화하고, 그 후에 징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두 번째 사항은 본이 되는 삶입니다. 합당한 본이 되고, 책임 있고 신뢰할 만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다양한 면을 서로 다른 이름을 부르심으로써 나타내셨고(창 1:10), 자신의 역사를 마치셨습니다(창 2:2). 아담은 하나님을 통해 이러한 역사의 도덕적인 면을 배웠습니다. 솔로몬은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잠 13:22)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선하고 의로우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 선하고 의로운 선택들은 결국에는 우리 자녀들에게 배당금을 받게 해줄 것입니다.

에덴 동산은 또한 공급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음식과 훈련(동산을 지키고 보호하도록 하심으로써)과 쉴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심으로써, 아담의 육체적인 필요들을 공급하셨습니다. 정신적으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심으로써 지적인 도전을 하셨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의 계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품과 목적에 합한 선한 것들을 주셨습니다(창 1:4,10,12,18,21,25,31).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공급하심으로써, 효과적인 징계를 위한 토양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필요한 가정이라고 하는 조직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육체적이고 도덕적인 한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가정에서의 구조적인 환경과 질서는 권위에 대한 순종의 삶을 사는데 필요한 배경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성공적인 징계는 신뢰적인 분위기에서 교육의 목적으로 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짓는 일에 있어서 아담의 결정을 다 받아주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작은 결정들을 하도록 허용하고 맡김으로써(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미래에 결정하는 능력을 개발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위험: 징계를 함에 있어서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

첫 번째 가능성은 징계에 대한 세상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징계를 시대에 뒤진 것으로 생각하고, 교육학자들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말하며, 정치인들은 그것을 불법적인 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를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모든 문화, 그리고 모든 시대에 있어서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징계하는 부모로서 마음이 낙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양육이 하나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우리 대부분의 부모는 그저 세살 박이 어린아이가 처음 작품으로 냉장고를 그려내는 정도의 실력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에는 예술가 자신 외에는 그 그림 속에서 실수를 아무도 발견해내질 못할 것입니다. 낙담이 되십니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잠 19:18)라고 말씀하십니다.

또다른 극단적인 모습은 그 결과에 대해 자만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걸작품을 만들어 낼 만큼 완전한 양육에 대한 보장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완전한 아버지이신 하나님 조차도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는도다"(사 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순종하는 자녀를 두는 놀라운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이라고 말해야 할 줄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