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정 - 친밀함으로의 여행

Marriage and the Family - The Journey to Intimacy


데이빗 올리버(David Oliver)


 

"그 사람과는 대화가 되질 않아", "우린 서로 통하질 않아", "그는 전혀 이해를 못해",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 이러한 말들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아 2:15)가 돌아다닌 흔적을 보여주는 발자국들입니다. 무언가 부부간의 기쁨의 원천을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주님과의 깊이 있는 사귐으로부터 떠나도록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요 15:5).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이러한 사랑의 관계는 이 땅의 모든 관계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관계인 결혼관계에 설레는 감정을 가져다줍니다. 결혼의 주춧돌인 사랑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갈 5:22)에 의해 꽃을 피웁니다. 친밀함은 결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숭고한 목표입니다. 친밀함은 육체적·정서적·영적인 연합을 통해서 실현되는 실체입니다.

솔로몬의 아가서의 주된 주제는 곧 부부가 서로 나누는 순결하고, 친밀하며,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사랑입니다. 이 "노래 중의 노래"(아 1:1)는 하나님과 사람, 즉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엡 5:32) 사이의 영원하고 궁극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그러한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상적인 관계가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인지, 아가서에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편의 부족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반면에, 신부의 부족함은 교훈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결혼관계에 있어서 결코 어느 한쪽에만 잘못이나 결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결혼관계를 발전시킬 주요한 책임이 일차적으로 남편에게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상호간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관계가 존재한다고 해서, 존재 자체만으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보존하며, 향유하는 일에는 성공적인 의사소통이 필수적입니다.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수단입니다.


대화의 문이 닫힐 때
아가서에 보면 관계의 발전에 방해를 받는 장면이 두 번 나타납니다. 첫 번째 장면은 아가서 3:1-4에 나타나 있습니다.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자의 존재를 당연히 여겼는지, 그녀는 너무 바쁜 나머지 그의 필요에 반응하지 못한 것 같이 보입니다. 물론 앞서서 그는 자신의 기대하는 마음을 이미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아 2:14)고 표현했었습니다. 하지만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은 부부간의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입니다. 대화는 그냥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를 통해 사랑이 성숙되어지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결혼에 있어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깊어 가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신뢰하는 친밀함은 결혼관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결코 처음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 초기에는 다만 친밀함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데 필요한 재료들이 존재하며, 그 목표를 향한 자원함과 약속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 목표를 향한 움직임은, 우리가 서로에 대한 기대들에 대해 함께 대화하며 그러한 기대들에 서로 반응할 때에 일어납니다. 이러한 경청이야말로 배우자의 욕구를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사실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는 말씀은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킬 책임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우리를 서로에 대한 헌신으로 인도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헌신이 없는 결혼은―그밖에 다른 관계도 마찬가지로―의미 있는 발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화에 있어서 두 번째 실패는 아가서 5:2-7에 나타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그 사랑하는 자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대해 신부는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감싸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아로 가득했습니다. 이기적이지 않는 것, 곧 이타심이 대화에 있어서 두 번째 열쇠에 해당합니다. 그저 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결혼관계를 바라보는 것은 대화를 제한합니다. 다른 관계에도 그렇듯이, 부부 사이의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쌍방이 동시에 듣는 것은 분명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자의 말에 반응하며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임으로 서로를 격려하는 바로 그 순간에 대화는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배우자의 필요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선 쌍방간에 자신의 필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배우자로부터 섬김을 받고자 하는 권리가 아니라, 내가 기꺼이 섬기겠다고 하는 선택입니다. 배우자를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배우자의 필요를 알아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배우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결혼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를 닮도록 촉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롬 15:3).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필요를 채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경청이야말로 조화를 이루는 열쇠입니다. 경청 여부에 따라 배우자의 영적·정서적·사회적·경제적·육체적 필요들이 채워질 것도 결정됩니다.

대화는 종종 침묵 속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서로의 손을 붙잡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침묵이 더욱 풍성한 표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침묵은 다른 한편으로 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평화를 지키려 하거나, 혹은 복종을 강요하기 위한 방편으로 침묵을 사용하는 것은 대화에 있어서 두 가지 열쇠 모두를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할 것을 택하는 것은 순전히 이기적인 선택입니다.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한 침묵은 자신의 필요를 알리는 데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남편이 감정이 격발되어 화를 낼 때에라도 아내가 잠잠히 순종하고 따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들은 남편의 원자로의 시동 장치가 막 가동되는 순간, 남편을 대하는데 있어서 친절하고 지혜롭게 행동하기보다는 움츠러들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 남편이 남편 자신과 결혼생활에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꼴이 됩니다. 그 어간에 아내들은 기대하고 존경했던 남편에 대한 실망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음으로, 남편에 대해 원한을 쌓게 되어 부부간의 친밀감을 제한하게 됩니다. 남편이 격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필요를 다루고 해결하고자 남편 눈앞에 들이대서는 안됩니다. 너무 나중은 아니더라도, 전처럼 위협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합당한 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는 것과 대화는 동의어가 아닙니다. 만일 서로의 필요를 배려해주는 마음과 비이기적인 마음이 대화의 한 부분이 아니라면, 말 그 자체는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듣는 사람이 대화 중에 사용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전혀 대화가 아닌 것입니다.


연료 탱크에 기름 채우기
언어는 연료와 같습니다. 언어는 대화를 친밀함으로 나아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 이탈리아 형제를 알고 있는데, 그는 스페인 이발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각자의 언어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둘 다 라틴계(Romance) 언어이기에 서로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연락(聯絡: connect-삼상 18:1 참조)"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른 사랑의 밀어(romance: 필자는 여기서 라틴어를 뜻하는 'Romance'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를 뜻하는 'romance'가 같은 단어로 되어있음에 착안해 언어 유희로 부부사이의 언어생활에 관한 자신의 뜻을 전하고 있다-역자주)로 말한다면, 그들 역시 서로 연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남편들은 남성 언어로 말하고, 아내들은 여성 언어로 말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배울 때까지, 대화는 이루어지질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서로 다른 역할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공동의 책임을 주셨지만(26-28절), 2장에서 하나님은 그 책임을 성취하기 위해 각각의 구별된 역할을 주셨습니다(남자는 15-20a절, 여자는 20b-24절). 아담은 가정 밖의 영역을 돌봐야 했고, 하와는 가정 안의 관계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남자는 행동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행동의 언어란 효과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에 대한 분석이나, 성취의 결과로 성공여부를 측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감정의 언어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목표달성을 위한 편안한 방법의 강조나, 관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성공여부를 측정하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남편은 결혼관계 밖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취함으로써 중요성의 개념을 생각합니다. 반면, 아내는 결혼관계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취함으로써 안전의 개념을 생각합니다. 남자의 언어에 있어서, 성취는 A에서 B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언어에 있어서, 성취란 여행을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에게 계획이란 A에서 B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을 발견하는 것이고, 여자에게는 여행을 하는 동안 경치 좋은 길을 찾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성취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나의 성취를 증명해주는 보상(돈, 지위, 완전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자들은 "성취했다"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단지 "나는 결과에 만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자의 언어로 성공은 "내가 선두에 섰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자의 언어로는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틀림없이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두 가지 언어 모두가 원래의 진정한 의미에서 퇴색되어 왔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남녀 각각의 역할들에 알맞는 언어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또 결혼의 친밀함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부부는 각각 서로의 언어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서로 배우자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을 도와야 합니다.


매력적인 사랑 표현
아가서에서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는데, 다양한 로맨틱한 언어로 서로의 사랑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이 적어도 다섯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아가서 1:8에서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9-11절과 15절에서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현대의 애정 표현으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와 같이, 사랑하는 자를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말들이 배우자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낮(아 1:7)과 밤(1:13)같은 뜻 깊은 시간으로도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아 1:2)와 같은 표현은 단어 자체가 명백하게 애정을 듬뿍 담은 표현입니다. 아가서 1장 8절("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과 11절("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을 은을 박아 만들리라")에 나타난 친절한 행동은 그 사랑하는 자가 자기 배우자를 돌보는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가 그녀를 자기 잔치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아 2:4), 그 사랑하는 자는 적합한 선물을 주면서(상대방의 입맛, 혹은 기대에 맞지 않는 것을 주는 것은 사랑의 결핍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여러 가지 사랑의 표현들 가운데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순서대로 열거한 다섯 가지 표현들을 가장 효과적인 것부터 그렇지 못한 것까지 차례대로 생각해보십시오. 120가지의 조합이 가능하고, 각 조합에 잘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로맨틱한 어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맺어준" 결혼이라고 해서 부부가 같은 로맨틱한 어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0만원 상당의 선물이 자기 사랑을 표현하는(적합한 선물을 주는 것) 남편의 방법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실제로 남편의 사랑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적합한 선물을 받는 것보다 격려의 말이 더욱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정이 가득한 마음으로 경청할 때, 우리는 배우자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만("왜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거죠?"), 소망("저는 언젠가 당신이 스스로 알아서 쓰레기를 치워주시길 바래요")과 인정("당신이 제 손을 잡을 때면, 정말 좋아요.")의 말들이 배우자의 마음을 아는 데에 실마리가 됩니다. 배우자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관계를 원활하게 해줍니다. 무엇이 우리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인지 알 때에,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의 숭고한 목표로 나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