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정 - 독신생활의 유익과 고통

Marriage and the Family - Gains and Pains of the Single Life

레슬리 웰즈(Leslie Wells, Tracadie, N.B.)
 

 

1세기 이래로 허다한 하나님의 종들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 시대에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고전 9:5)도 결혼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개역성경에 따르면 이 구절은 "나머지 사도들(the rest of the apostles)"로 되어 있는데, 이는 주의 형제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도들이 결혼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후 수세기에 걸쳐서 잘 알려진 주의 종들은 모두 결혼을 했습니다.


윌리암 캐리, 조지 휫필드, 존과 찰스 웨슬리, 허드슨 테일러, 데이비드 리빙스톤, 조지 뮬러, 안토니 노리스 그로브스, 아도니람 저드슨, 디 엘 무디, 찰스 스펄전, 그리고 해리 아이언사이드와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틴 루터는 42세까지는 독신으로 있었지만, 후에는 전직 수녀였던 케이티 폰 보라 양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섬김을 위해 독신으로 일생을 살았던 탁월한 소수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1세기에 살았던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더욱 최근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존 넬슨 다비, 인도와 페르시아의 선교사였던 헨리 마틴, 그리고 동시대 인물로는 아프리카 차드에서 선교했던 호주 출신의 존 올리와 캘리포니아 출신의 W. J. 맥클루어가 있는데, 이들은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독신으로 남아서 주님을 섬김으로써 얻는 유익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독신의 유익
첫 번째 유익은 마음이 나뉘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독신인 사람은 영적인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생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주님을 섬기기 위한 일에 헌신할 수가 있습니다. 독신인 사람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가장 관련이 있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장은 "…에 대하여는"이라는 구절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절부터 24절까지로, 혼인한 자들과 및 하나님이 복음으로 부르신 각 사람에게 부르신 그 상태로 지낼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25절부터 40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 부분에서 25절부터 38절까지는 혼인한 일이 없는 처녀들에 대한 권면의 말과 39절부터 40절까지는 재혼하지 않은 과부들에 대한 말씀으로 다시 나눌 수 있습니다. 소단락의 32절에서 사도 바울은 먼저 혼인하지 않은 남자들의 생활양식에 대해 기술하고 있고, 34절에서는 혼인하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혼인한 사람과 혼인하지 않은 사람의 두 경우를 비교해서 대조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장가가지 않은 형제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하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 자매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바울은 장가간 형제의 경우,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33절)하며 염려하게 되고, 시집간 자매의 경우에는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34下)하며 염려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이유에 대해 "너희로 하여금…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문자적인 의미로 '계속 곁에 앉아 있도록' 혹은 '자신을 부지런히 헌신하여'의 의미가 있음-W. E. Vine의 신약 단어사전 참조)하려 함이라"(35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주의 일에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들 뿐 아니라, 그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소위 말하는 '전심 사역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바울은 사실 주님을 더욱 섬기기 위해서라면 모든 사람이 독신으로 살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다 이러한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7절). 이에 처녀들에 대한 말씀에서 "(형제가)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28절)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헌신적으로, 또한 희생적으로 섬기기 원한다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은 독신생활을 하도록 강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결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독신상태는 아내와 자녀들을 동반하는데 위험한 장소나 상황에 있어서 주님을 섬기는 영역을 넓혀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독신인 형제는 더 연약한 그릇인 아내가 고통받는 것을 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그러한 곳일지라도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매 선교사의 경우 남편과 자녀들이 지속적인 테러의 위협을 받는 곳일지라도 기꺼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적인 고난" 혹은 핍박에 대해서, "이런 (혼인한)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라고 말하면서,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28절下)고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독신으로 생활할 수 있는 젊은 형제들이 이렇게 주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면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복음화되지 않은 많은 나라들이 현재 이처럼 전적으로 헌신된 일군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적진으로 뛰어들 준비가 된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신으로 살 때, 섬김에 있어서 또다른 유익은(이미 암시를 드렸지만), 주님을 섬기기 위해 움직이기 쉬운 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독신인 형제는 주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가정 문제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즉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집에 반드시 돌아올 필요도 없이 다른 포도밭으로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오직 주의 일의 최선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활동에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문제에 관한 한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인도가 있으면, 그는 모든 것을 처분하고,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가는데 자유롭습니다. 주님이 어떤 사역에 그를 적합하다고 보셨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난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더욱 용이한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의 경우에 이러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그들이 감당해야 할 짐은 더욱 무겁습니다. 같은 경우라도 독신인 형제는 자신의 몫만 감당하면 되기 때문에, 당연히 감당해야 할 짐이 더욱 가볍습니다.

독신의 고통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것이 물론 이상적이지만, 실제로 독신인 형제도 일상생활의 의무적인 일들을 감당해야 하며, 특히 아내의 몫을 대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그는 가사 일에 대한 시간을 줄임으로써, 주님의 복된 사역에 자신을 더욱 헌신하기 위한 계획들에 매진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어딘가에 살아야 하고, 그 집은 주님을 위한 하나의 간증이 됩니다. 그는 집안을 지저분하게 해놓거나, 소홀히 한 상태에서 집을 나설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집안도 돌보아야 합니다. 자기 집을 잘 정돈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만, 항상 적당한 사람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쇼핑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바깥 허드렛일도 해야 합니다. 음식을 만들고, 옷을 세탁하고, 그밖에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주의 일을 위한 시간은 기대한 만큼 그리 많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도 당면해야할 하나의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것은 어떤 문화에 있어서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고통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이러한 문화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은 불신의 대상이 됩니다. 그가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가 아내가 없는 이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무슨 은밀한 죄악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를 도덕적으로 부패하거나, 혹은 피폐된 삶을 사는 사회의 범죄자로 오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집을 비운 부재기간 동안, 혹은 불규칙적으로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이 바로 그러한 증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증거나 간증은 효력이 없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어려움 없이도 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도덕한 사람, 특히 여자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를 계략을 써서 미궁에 몰아넣고자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부정한 행위에 대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와 같은 비참한 경험은 영적으로 해로운 것이며, 심지어 주님을 위한 사역에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신인 형제는 섬김에 있어서 그러한 두려움을 잘 감당할 수 있지만, 주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는 일에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과의 달콤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께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시련과 슬픔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거기서 위안을 얻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분야에 많은 동역자들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교제를 누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시련과 제반 문제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통한 마음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긴장과 그의 영을 압박하고 있는 걱정과 짐으로 인해 자신이 섬기고 있는 분야에 대한 이해를 나누고 있는 동역자와의 교제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를 주님께 맡기지만, 또한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문제들을 감당하면서 느끼는 마음의 평안도 더욱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누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주님은 아담에게 배필이 필요한 것을 보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와가 창조된 이유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독신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은 큰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신인 주님의 종은 예고된 고통에 직면해야 합니다. 각 경우를 충분히 고려해보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