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적 유산인 성경공부/ David Dunlap

 

우리의 영적 유산인 성경공부

 

 

Bible Study Heritage



 


데이빗 던랩(David Dunlap)




150여년 전 “플리머스 브레들린(형제교회)”로 알려진 사람들은 성경의 명령에 충실한 사람들로 유명했습니다. 이 형제교회 운동은 그 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들이 교계에 미친 영향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많은 교계의 지도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침례교회 목회자이며 저술가인 A.T. 피어선(Pierson)은 형제교회의 영적인 위상에 대해 “그 시대 우리 땅에 거인들이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C.H. 매킨토시, 윌리엄 켈리(William Kelly)와 같은 인물들을 거론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형제교회의 영적인 힘은 명백한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의 흔적(mark)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심오한 영적인 인물들에 의한 강력한 성경 교육과 진지한 기도, 그리고 영혼 구령에 대한 열심이 이 운동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들을 복주시는 하나님의 손은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한 저술가는 1878년경, 즉 처음 형제교회가 세워진지 50년이 흐른 후, 세계 29개국에 1,388개의 모임이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앤드류 밀러Andrew Miller, The Brethren: Their Origin, Progress and Testimony. (Hong Kong Christian Book Room, 1878), p.5] 이 통계는 소위 보수적인 형제교회(exclusive brethren)만을 다룬 자료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괄목할 만한 영적인 성장의 배후에 어떤 원인들이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인간적인 수준에서 논하자면, 이들 형제들이 함께 모이는 모임의 독특한 방식에 가장 큰 공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집회들은 종종 “오두막 집회(cottage meetings)”, 또는 “읽기 집회(reading meetings)”로 불렸습니다. 이 집회들의 목적은 아마도 가르침 아니면 복음전도였습니다. 이 집회들이 모임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복음전도자이면서 저술가인 앤드류 밀러는 이러한 집회의 용도에 대해 직접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합니다.

“읽기 집회는 형제들이 진리를 소개하거나 전파하는 데 사용한 원칙적인 수단이 되어 왔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집회들은 신성한 말씀에 대한 정확하고 광대한 지식을 나누는 일 모두에 주님에 의해 크게 사용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경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도록 자극하는 종류의 집회는 없었다.”(같은 책, p. 36)


 

이 집회들은 모든 부류의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J.N. 다비(Darby)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는 매주 정기적인 성경 읽기 집회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 두 집회는 리머릭시에서 가장 세속적인 가정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유일한 어려움은 밀려오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랍니다.”(나폴레옹 노엘Napoleon Noel, The History of Brethren, (Denver, W.F. Knapp, 1936), p.22).


 

성경 읽기를 목적으로 한 가정에 25-30여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따뜻했고 친근했습니다. 이 집회에 온 방문자들은 즉시로 자신들이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종종 영국식 차나 약간의 음식이 집회 전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정식 교제의 시간에 뒤이어 식사가 나왔고, 그때 집 주인과 인도자들은 새로운 사람이나 그 밖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이때는 방문객들의 믿음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겐 그들의 영적인 필요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앤드류 밀러는 1860년 경 처음으로 가정 집회에 방문한 일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한 친구에 의해 초대를 받아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읽기를 위해 모이고 있는 집회에 가게 되었는데, 그 집회는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이 모여 있을 때 친구들을 살펴보니, 대략 30여 명쯤이었다. 차가 나오기 전 대화의 주제는 다른 집회들 가운데 주님이 역사하신 것에 대한 것으로 보였다. 일반적인 뉴스거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정치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순전히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졌다.”(앤드류 밀러, 같은 책, p. 42)


 

이 집회들은 일주일 가운데 아무 때나 어느 한 날을 정해서 열렸고, 아무 시간에나 열릴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함께 모이는 완전한 자유가 있었습니다. 집회들은 정오에 선착장에서나 또는 이른 아침에 열릴 수 있었고, 대개는 저녁 시간에 열렸습니다. 나폴레옹 노엘(Napoleon Noel)은 런던에서 주일 아침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 한 집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주일 아침 성경읽기 집회는 G.V. 위그람(Wigram)의 제안으로 1845년에 시작되었으며, 그들은 수년 동안 큰 축복 가운데 성공적으로 집회를 인도했다. 누군가 아침 6시 30분에 와서 스토브 위에 주전자를 갖다놓고, 빵를 자르고 버터를 준비한다. 빵, 버터, 우유, 그리고 다른 음식들은 이미 전날 저녁에 봉사하는 사람에 의해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7시 30분에는 기도 집회가 있었고, 그 후에 8시 15분에 아침 식사가 제공된다. 그 후에 성경 읽기가 9시 경에 시작되었다. 참석자들은 15명에서 25명, 혹은 그 이상이 되기도 했으며, 가끔 J.N. 다비(Darby) 형제가 와서 가르치곤 했다. 10시 30분에는 모든 사람이 산책을 나갔고, 주의 만찬을 갖기 위해 11시에 돌아왔다. 11시 이후에는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고, 집회는 매우 존귀하게 여겨졌고 큰 기쁨이 흘러 넘쳤다.”(노엘의 같은 책, p. 16)


 

이러한 집회들의 성공은 단순히 그 방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임하는 영적인 축복에 대한 넘치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하는 성경 공부 방식인 “이 구절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가 아니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였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성경 읽기 집회를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성경에 쏟아 부었습니다. 일상적인 읽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 간절한 기도와 함께 한 공부에서 얻어진 심오한 영적 교훈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어느 대학 교수는 윌리엄 켈리에 대해 “그가 쓴 주석을 보면 헬라어 용법에 정통했던 것이 분명하며, 특별히 바울의 서신서 연구들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다소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들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헬라어 용법에 대한 그의 넓고 정확한 식견 때문이었다. 그의 헬라어 용법에 관한 식견은 문법책이나 혹은 사전에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오랫동안 인내하며 연구한 열매이다.”(브루스 F.F. Bruce, In Retrospect Remembrance of Things Past, (Grand Rapids: Eerdmans, 1980) p.293)라고 썼습니다.


 

이 집회들은 또한 잘 준비된 리더십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유능하며 경건한 사람들이 집회를 인도했으며, 그들에게선 “지존자의 거처”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나온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집회는 보통 다음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한가지로 진행되었습니다. 성경을 가장 깊이 아는 사람이 성경을 강해하거나, 또는 논의나 질문이 어떤 형제에게 주어지면 성경 공부 중에 그에 대해 설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로버트 채프만이 인도했던 오두막 집회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우리는 오두막 집회에 가서, 처음으로 로버트 채프만이 성경을 강해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자신의 주제에 집중할 때에는 마치 깊음이 깊음을 불러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으며, 그가 성경을 덮을 때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나는 완전히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프랭크 홈즈Frank Holmes, Brother Indeed, (Kilmarnock: John Ritchie LTD, 1988) p. 98)


 

그 날 집회에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깊은 갈망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토론-질문 연구 시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면서 앤드류 밀러는 “저녁 7시에 성경의 한 장이 정해졌고, 모든 사람이 그 장을 읽었다. 그 의미와 연결, 그리고 중요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었고, 그러는 중에 그 말씀에서 가장 풍성한 교훈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면 곧 차례대로 그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찬송과 기도 후에 무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가 대략 10시 정도였다.”(앤드류 밀러, 같은 책, p.43)라고 말했습니다.

이 집회들에서의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늘날은 한 사람이 성경 공부를 위해 가정으로 사람들을 모은 다음에, 인도자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이 서로 서로를 가르칩니다. 그러다보면 이러한 성경공부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경험한 것들과 느낀 점들을 나누는 데 빠져서, 성경 공부와는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다가 마치곤 합니다. 슬픈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참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도전하고 지성을 깨우치는 것은 성경을 분명하고도 모호함이 없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많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이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하는 교사들의 사역에 대한 요구가 커졌습니다. 곧 그들의 말씀 사역은 지면에 프린트되어 해외로 배부되었습니다. 영국의 거실에서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풍성한 사역은 이제 다른 많은 나라의 서재를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이 수 많은 책들에 담겨 있는 풍성한 축복들과 책에서 크게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결코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음전도자인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은 “형제 교회”에 속한 저술가들이 쓴 책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내가 십대였을 때,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모이고 있던 형제교회의 성경 공부에 참석하셨고, 그분들은 스코필드 성경을 열정적으로 공부하셨다. 나의 어머니는 뉴욕으로 편지를 보내어 우편 주문을 통해 기독교 서적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는데, 곧 열렬한 독자가 되셨다. 그래서 집에는 늘 읽을 만한 좋은 책들이 쌓여 있기 마련이었다.”(빌리 그레이엄, Billy Graham, Facing Death and the Life After, (Waco, Texas: Word Books, 1978) p.179)


 

소책자나 책들이 읽히면서, 그들의 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축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직접 말씀을 듣기 위해 바다를 건너오기도 했습니다. 많은 지도자격인 성경 교사들이 커져가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과감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해롤드 세인트 존(Harold St. John)은 보다 큰 규모의 집회 가운데 한 모임을 방문했던 일에 대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제 젊은 시절을 추억해보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윌리엄 켈리(William Kelly) 형제님이 런던까지 오셔서 매년 시리즈로 강해하시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사야서나 이스라엘 포로기의 책에 대한 일곱 편의 설교를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매년 성경의 더 광대한 부분들에 대해 말씀을 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몇 개월에 걸쳐 말씀을 준비했고,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가장 넓은 홀 밖에서도 사람들이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 훌륭하신 분께서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펴시고 정통한 영어로 한 시간 조금 넘게 말씀을 전하시곤 했습니다.”(P. St. John, Harold St. John; A Portrait by his Daughter(London: Pickering & Inglis, 1959) p.141)


 

“형제들”은 빠른 속도로 전세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리더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책과 정기 간행물들은 교파를 초월해서 읽혔습니다. 바야흐로 많은 교회들의 강단과 수양회가 그들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가르침을 얻고 인도를 받기 위해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1867년 한 미국의 복음전도자가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D.L. 무디(Moody)였습니다. 이번 방문은 도시 전도대회를 열거나 영국의 큰 교회들 가운데 하나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하게 배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의심과 낙담이 그의 마음을 눌렀습니다. 전에는 설교가운데 능력과 열정을 경험했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한 전기 작가는 무디의 최초의 영국 방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엠마(무디의 아내-역자주)가 무디에게 영국을 방문하도록 격려했는데,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거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방문은 무디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었다. 시카고에 있는 플리머스 형제교회는 성령충만한 영국 형제교회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값을 따질 수 없는 비밀을 받았다. 당시 영국에는 C.H. 매킨토시나 J.N. 다비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책은 무디에게 큰 축복을 주었었다. 이 여행의 동기는 그 책들의 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무디의 영적인 천식(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호흡곤란-역자주)을 치유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여행의 전반적인 결과는 그를 변화시키고 있었다.”(리차드 데이Richard Day, Bush Aglow; The Life of Dwight Layman Moody, (Philadelphia: Judson, 1945) p.12)


 

지난 16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경건한 성품으로 알맞게 무장한 헌신된 사람들이 복음전파의 새로운 지경을 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를 드러냄으로써(exegesis) 얻게 된 확신은 일반적으로 용인되어온 신학을 향해 도전했습니다. 경건한 간증들은 세계 선교를 위한 노력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신실한 사역들은 이미 있는 교회들에게 교회의 기초와 목적을 재고하도록 자극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형제교회” 가운데서도 이러한 사역이 다시금 일어나길 소원해 봅니다.

 

- "초기 형제교회 저술가들의 책들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면, 나는 그것들을 처분하기 보다는 차라리 성경을 제외하고 나의 책장의 모든 책을 버리겠다. 그 책들은 내게 성경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 D.L. 무디

- "그들(형제교회의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지를 보여주었다. 또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는 구원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교회역사가 시작된 이래, 복음이 그 시대만큼 분명히 전파된 시기는 일찌기 없었다. 또한 처음으로 성경 예언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었고, 그로 인해 주님의 재림이 곧 교회의 소망임을 볼 수 있도록 해준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 워치만 니

-"오늘날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창하는 진리들 중 대부분은 플리머스 형제교회 알려진 운동의 재생에 불과하다."

- 존 F. 왈부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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