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Walter Scott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Christ is Our Hope


 

 

 

월터 스콧(Walter Scott)


 

신자로서 우리의 소망은 주께서 말씀하신 바,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라는 말씀대로, 우리를 주님 자신에게로 이끌어주시고, 그 후에 영광 가운데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해주실 주님의 인격적인 재림입니다. 아, 참으로 이것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친히 오시는 주님이 우리의 “복된 소망”입니다. 지금 아버지 집에 거하시는 그분 자신과, 거기서 우리가 도덕적으로(요일 3:2), 육체적으로(빌 3:21) 그분과 같이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들인 것입니다.


 

교회의 소망

주님은 “자기 백성”들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시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로 좇아 하늘로서 “공중”에 임하실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땅끝 사방과 각 나라에서 모으실 것이며, 무덤과 땅과 바다에서도 불러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구속함을 받은 사람이면 한 사람도 남겨지는 일없이, 즉 땅에서 살아남은 성도나, 또는 무덤에서 안식하는 성도나, 또는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이미 티끌로 화한 성도일지라도 휴거될 것입니다. “호령”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천사장의)소리”는 깨어있는 자나 잠들어 있는 자 모두에게 들릴 것입니다. “나팔 소리”는 성도들을 구름(chariot-clouds) 속으로 불러 모으는 소집령으로, 이에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다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질” 것입니다. 공중은 우리 영혼이 사모하는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입니다(살전 4:17). 주님은 미리 약속하셨기에, 그 만남을 확실히 지키실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 곧 영광스럽고 점도 없고, 시대적인 차이도 없이, 또한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를 자기 앞에 세우시는 때입니다(엡 5:25-27, 골 3:4).


그렇다면 신랑이 오는 것 말고 신부의 소망이 또 있겠습니까(계 22:17)? 현재 그리스도와 정혼한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는 것 외에 달리 무슨 소망이 있을까요(고후 11:2, 계 19:7)? 이 어떠한 소망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자기에게로 이끄시기 위해 친히 오시며, 이 교회를 모든 창조세계에 대한 공동 후사로서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며(엡 1:10-11), 교회가 영원한 신부의 사랑을 간직하게 하시며, 영원한 관계를 굳게 세우시는 것입니다(계 21:2).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엄한 미래에서 우리도 참여하게 될 분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라(왕국)와 권세와 기업이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의 태양은 결코 지지 않을 것이며, 그분의 영광은 쇠함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소망

종들의 소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 그분 앞에서 자기 수고의 열매를 얻는 것입니다(살전 2:19).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영광의 면류관이 지금 하나님의 양무리 가운데서 수고하는 충성스러운 일군의 이마에 씌워질 것입니다(벧전 5:1-4). 의의 면류관은 봉사에 대한 상급으로써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질 것입니다(딤후 4:7-8).


네 개의 면류관은 상급과 격려를 위해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금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계 4:4). 충성스러운 종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계 2:10). 헌신된 종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딤후 4:8).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은 신실한 목자들에게 풍성한 보상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와 영광을 전하는 사자들로서,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눅 12:36)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소망

여호와-예수님, 곧 구주 예수님이야말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렘 14:7-9)라며 부르짖었던 바로 그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언제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질까요?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음에도 가차 없이 메시야를 거절한 그 죄를 뉘우치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 23:39)라고 할 때까지 이스라엘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그런 후에야 그들은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는 보지 못한 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벧전 1:8).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치 도마처럼 직접 주님을 뵐 때에야 믿게 될 것입니다(요 20:29). 이스라엘의 축복 -그들이 찌른바 그분을 뵙게 됨으로써 임하는- 은 스가랴서 12장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듯이 여전히 미래적입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A.D. 70년 때처럼 로마 군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지막 때에 있을 북동쪽의 권세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전에 함락된 적이 있었지만, 이제 두 번째로 침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휴거된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서 감람산에 강림하심으로써(슥 14:5), 자기 백성들(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그 대적들을 멸망시키는 흥미로운 순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임하시는 주님의 직접적인 중재(지상 재림)만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 앞에서 애통하며 울었듯이(이것은 하나의 모형입니다) 메시야의 강림하심을 보며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야말로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회복하는 때와 기한이 이른 것입니다(행 1:6-7). 선지자들의 영광스러운 선포들과 시편 기자들이 노래한 시편 주제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때입니다. 시편 72편은 이러한 천년왕국 시대에 대한 참되고 실제적인 묘사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소망은 한 민족으로서의 회심을 위한 것이든, 천년왕국의 영광을 위한 것이든 메시야의 인격적인 재림인 것입니다.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


그 뒤에 시온의 영광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는데, 그것을 묘사하고 있는 언어의 아름다움은 세상의 그 어떤 문학작품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사 60장).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신 주님은 이스라엘을 그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며(마 1:21), 또한 그 대적에게서 건지실 것입니다(눅 1:71). 시편 136편에서 스물여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는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에 찬 외침이 될 것입니다.


선지서를 읽되, 실제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으로 읽으십시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장래에 대한 구약성경의 단순하고 명백한 무수한 예언들을 애써 부인하고 무효화시키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소망

지난 6천년동안 이 창조 세계(또는 피조물)는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그처럼 수세기 동안 종노릇한데서 언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 보다는 피조물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게 될까요? 묘사된 우리의 미래 영광은 탄식하고 고통하는 피조물들을 자유케 할 것이며, 따라서 이 계시로 말미암아 피조물들은 그 때를 몹시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22). 그러한 “나타남”은 그리스도와 믿는 우리가 영광 중에 나타나는 때(골 3:4)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시편 65편과 호세아서 2장 18-22절은 이 땅을 위한 복된 미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희년은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노래와 춤을 통해 경축될 것입니다(시 110편). 그리고 일천년 동안 큰 평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복된 소망과 영광스러운 재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복된 소망”(딤전 1:1)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된 소망은 구약의 예언적인 다른 사건들과는 구별됩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만 알려진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의 중심 주제입니다(살전 4:15, 고전 15:51).


이스라엘과 관련된 예언과 교회와 관련된 계시를 연관지어 생각해 봅시다. 주께서 친히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 광채로 빛을 발하게 될 이 영광 이상의 영광은, 그 도덕적인 탁월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인격 안에 있는 무한히 깊은 영광입니다.


우리는 장차 이 땅에 임하시는 한 분(the One)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분은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면류관이나 수금과 비파, 흰옷, 영광, 또는 왕국이 아니라 주님 자신이십니다. 실로 “복된 소망”으로 불리기에 합당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앙망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영광보다 그분 자신이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이 함께 우리의 확실한 소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광의 나타남”(이 말은 헬라어 ‘에피파니’를 가리키며,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을 가리킴: 역자주) 또는 “영광스러운 재림”은 성도들을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성도들을 위해 오시는 재림 이후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이때는 바로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영광의 나타남”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세상과 천사들과 교회가 그것을 목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은 장엄한 공개적인 사건이 될 것이며, 강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엄청난 장관을 이룰 것입니다(계 19:12).


성도로서 우리는 그러한 복된 소망이 성취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종으로서 우리는 영광의 나타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자는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 것이지만, 후자는 우리의 책임과 연관이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로 하여금 새벽별이신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며, 후자는 그리스도의 왕국과 관련된 영광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우리 소망의 성취와 영광의 나타남 사이에는 적어도 칠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는데, 이때를 가리켜 다니엘 70이레 가운데 마지막 이레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사건 모두 하나의 확고한 소망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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