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예배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 / Sandy McEachern

 

만찬 예배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

Priestly Worship


 

 


주의 만찬에서 어떻게 기념하는가?



샌디 맥체른(Sandy McEachern)


 


찬송: 찬송은 주의 만찬에 있어서 경이로운 부분입니다. 시편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그 당시에도 찬송이 예배 경험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찬송은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 같은 생각을 하도록 우리를 묶어주는 -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찬송은 우리가 예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마음을 분발시켜줍니다.

그러나 찬송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마치 나의 감정인 양 착각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 마음에 떠오른 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찬송 가사가 그러한 우리 마음의 감정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을 따져 말하자면, 그것은 여전히 그들의 감정일 뿐입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찬송은 우리를 산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찬송은 단지 혼적인 경험에서 그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만찬 상 앞에 있습니다. 찬송은 의미 없는 반복이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예배에 집중을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눈물 없이 우리가 어떻게 찬송을 드릴 수 있는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찬송가에는 종종 위대한 생각들이 담겨있지만, 우리는 슬쩍 그 생각에서 벗어나 있을 때가 있습니다.


 

혼(soul)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우리 존재의 한 부분입니다. 물론 예배 모임에는 혼과 감정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의 큰 희생을 기억함으로써 슬픔이 깃든 기쁜 마음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러한 예배 모임에 그저 의무적인 마음으로 나왔다가 실망하는 마음만 안고 돌아간다면, 그것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주님을 찬미하고 경배함으로써, 그 예배 시간은 기쁨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마도 찬송은 예배 중에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주는 찬송 몇 곡을 부르는 것은 예배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제일 먼저 찬송을 택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분별력이 뛰어난 신령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첫 번째 찬송이 종종 예배 모임의 흐름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기대하는 바는 모든 사람이 미리 준비해 오는 것이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조화를 이루며 차례대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만일 첫 번째 찬송이 합당하다면, 그 찬송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줄 것이며 자연스럽게 그 다음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예배가 진행되어 가면서 성도들이 집중하게 되면, 제 생각으론 점차로 찬송가를 선택하는 일을 자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떡과 잔에 대한 감사로 더욱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제 생각에는 바로 그 시점이야말로 우리가 경외하는 마음으로 엎드려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는 침묵 가운데 경배와 감사 기도를 드리는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물론 “경배하라 어리신양 천군천사 외치니 만만성도 한맘으로 크게 화답하도다”와 같은 찬송의 말과 같이, 어떤 분이 마음의 감정과 찬송을 표현한 것을 인용하며 찬양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말로,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아침에 당신을 예배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표현되기만 한다면 주님이 찾으시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찬송만 부르는 주의 만찬을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묵상: 주의 만찬 자리에서 누군가 성경을 읽는 일은 합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24장에서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주님의 생애 가운데 일어난 일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기억하는데 중요한 재료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 주님의 인격을 상기시켜줍니다.


 

불행하게도, 종종 어떤 사람은 주의 만찬상 앞에서 성경을 펴서 가르치거나 권고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면 그 사람에게 주의가 집중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는 일은 우리 마음 속에 경배의 영이 일어나도록 경배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과연 성경을 읽는 것이 참된 예배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될 수 있는데, 즉 아주 근사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빼앗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절제한 일들에 예배 시간이 다 빼앗길 염려도 있습니다.


 

또한 그런 식으로 설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경우 혼란을 조장하게 되며, 따라서 만찬의 주제와 흐름에서 벗어나게 되곤 합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고 그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할 때는 많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임할 때, 성령님은 그 순간에 우리가 반드시 생각하고 묵상해야 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 관한 것들을 이끌어 오십니다.


 

기도: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감정을 반영하는 경이로운 것입니다. 물론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것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사실 우리 모두는 우리 삶 속에서 보고 들은 경험의 집합체입니다). 기도는 완전한 집중을 요합니다 - 우리 생각을 그냥 떠다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매주 단순히 형식적인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매주 똑같은 내용으로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 마음의 참된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매번 현재적인 기쁨과 신선함 가운데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주된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배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시간이지, 축복과 같은 것들을 구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기도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한 예배 형태의 외적인 표현입니다. 신자가 주님께 자신의 예배를 표현할 때,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말로 표현되는 것이든 그렇지 않든, 전능하신 하늘 하나님께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성이 잠잠히 예배를 드릴 때, 여성은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 말씀에 정하신 표준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매님들이시여, 저는 여러분이 주의 만찬 상 앞에서 잠잠히 드렸던 그 정금같은 예배의 결과로, 주께서 당신을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부르셔서 상급으로 정금을 베푸실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순간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는 가장 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종종 여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자매님들이시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에 큰 기쁨을 가져다드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잠잠히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귀중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마음을 다해 단순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는 당신이 어떠한 분이시며, 또한 어떤 일을 해주셨는지를 제 영혼이 알기 때문입니다.”라고 진실하게 고백하며 예배하는 그 시간은 진실로 고귀한 시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주의 만찬이 의미하는 핵심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의 어떤 측면에 집중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찬송들을 부르고, 그 다음에 한 두 사람이 합당한 본문을 읽고, 전체적으로 순서를 따라 일어나서 예배를 드립니다.


 

어떤 분은 주의 만찬은 수동적이며, 또한 공동체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활동적이며, 또한 개인적인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 함께 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만찬상 앞에 나 혼자만 있다는 마음으로, 그 시간이야말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함께 부르는 찬송과 공적인 성경 봉독과 공중기도가 우리를 깊은 예배 가운데 이끌어주지만, 그러나 예배는 여전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10분내지 15분 정도  찬송을 부르고는, “이 정도면 나는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젖히고 앉아, 우리의 생각이 마음대로 떠돌도록 방치해두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 이상 예배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1주일에 한번 나아오도록 요청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우리 자신을 그 집회의 일부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얼마나 자주 집중하지 못하며, 우리의 생각을 헛되이 떠돌도록 허락하는지요! 당신이 말로써 감사에 참예하든지 하지 않든지, 당신의 마음은 그 시간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영광의 주님께 한 시간도 드리지 못한다면, 그분과 그분의 생각이 내 영혼에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미리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을 따로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를 드리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일어나자마자  “나는 항상 예배드릴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준비할 필요가 무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을 경청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 가운데서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자 주님께 나아가고자 한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소리를 내어 감사를 드리든지 또는 그렇지 않든지 간에, 당신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셔서, 그 말씀을 당신의 마음에 적용하도록 하신 것, 곧 그리스도께 대한 묵상을 주신 것으로 다시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 전날 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피고 죄를 자백한 다음에 주님께 나아갈 때에야 주님을 도덕적으로 합당하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새로운 신자나 주의 만찬의 기능과 형식에 관심있는 성도들에게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성경공부반이 모든 교회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배에 대한 적절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 수년 동안 지역 교회의 교제에 참여하거나, 또는 매주일 떡을 떼는 분들이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공적인 가르침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일대일 양육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신중하고도 넓은 마음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든 꼭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예배를 잘 드릴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는 마음 아파하며, “그건 예배가 아니었어.”라거나 혹은 “그게 아닌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저 슬퍼만 하지 마시고, 이제 예배에 대해 뭔가 실제적인 것을 하십시오. 젊은 청년들, 혹은 새로운 신자들 옆에 앉아 예배의 원리와 방법들을 설명해주십시오.


 

우리는 더 성숙한 신자들로부터 긍정적인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만일 누군가 “이보게. 젊은 형제. 오늘 아침 형제가 예배드린 것은 정말 내 마음을 감동케 했네. 내 영혼에 축복이 되었어. 나의 예배를 더욱 깊게 해주었네.”라고 말할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정녕 우리를 도우사 지성소의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배우게 하시고, 그곳에 자주 들어가 신령과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예배하도록 도우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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