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의 도전 / William MacDonald

 

영적 전쟁의 도전



영적 군사들을 위한 실제적인 교훈

 


참된 기독교는 현대 기독교계에서 묘사하고 있는 일종의 연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오늘날 횡행하는 사치와 일락의 풍조와 혼동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는 오히려 죽음을 무릅쓴 치열한 싸움이며, 지옥 세력과의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싸움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습니다.


 

전쟁에서는 연합해야 한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당을 짓고 싸우는 일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반드시 연합해야 합니다. 연합에 이르는 길은 겸손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 다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싸우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잠 13:10) 교만이 없는 곳에는 다툼이 깃들일 자리가 없습니다.


 

전쟁은 검소하고 희생적인 삶을 요구한다. 전쟁은 예외 없이 막대한 물자 보급 시스템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전쟁 중에 있음을 깨닫고, 소비를 최소화함으로써 가능한 많은 자원을 전쟁에 투입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전쟁에는 무기를 잘 사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열심을 내어야 하며, 믿음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대적의 요새를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일에 능숙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는 신자로 하여금 이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도록 있는 힘을 다해 온갖 속임수를 쓸 것입니다. 그는 성경의 영감성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의 부분들을 부풀릴지도 모릅니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인간의 전통을 가지고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군사는 마땅히 자신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서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이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그 효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전쟁에는 적에 대한 지식과 적의 전략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우리는 또한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고후 11:14)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훈련된 그리스도의 군사는 극심한 반대와 적대가 술주정뱅이나 강도나 창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인 성직자들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도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를 박해했던 사람들도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그 후로 2천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사단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처럼 가장합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종교의 옷을 입고 경건한 체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증오로 가득합니다.


 

전쟁은 마음을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군인으로 복무하는 사람은 공적인 삶을 엉클어지게 하는 일을 피함으로써, 자신이 소속된 부대의 장군을 만족시킨다”(딤후 2:4, Weymouth 역).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신의 영혼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전적인 헌신 사이에 그 무엇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따라서 그는 공격적이지 않으면서도 엄격할 수 있고,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견고합니다. 그에게는 하나의 열정, 오직 하나의 열정만이 있습니다. 그밖에 모든 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합니다.


 

전쟁은 위험에 직면할 용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엡 6:13,14) 에베소서 6장 13-14절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입어야할 전신갑주에 대한 설명인데, 등을 위한 방비가 전혀 없기 때문에 후퇴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후퇴가 없는 것일까요? 만일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면(롬 8:37),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는 일에 성공할 수 없다면, 만일 우리가 싸움에 나가기도 전에 승리가 이미 우리의 것이라면, 우리가 어찌 후퇴하여 도망갈 궁리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윌리암 맥도날드 저

'참된 제자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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