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믿음 Vs. 거짓된 믿음 / Peter Hedley

 

참된 믿음 Vs. 거짓된 믿음


 

원제: Faith

 

피터 해들리(Peter Hedley), 영국, 엑시터




복음 전도자나 교회를 처음으로 개척하는 사람들은 회심자들에게서 참된 믿음의 증거를 부지런히 찾아볼 것입니다. 이 글은 이러한 참된 믿음의 증거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그 삶이 선한 일로 특징지어진다.

엡 2:10, 살후 2:17, 딤전 2:7, 딤후 3:17, 히 6:10, 10:24. 참으로 구원받은 믿음에 있어서 선한 행위는 필수적인 표지라는 것이 야고보서 2장 14-26절에 의하면 분명해 보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을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숙고해보아야 할 합당한 두 가지 질문으로 서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 믿음이 삶의 모습 속에 선한 일을 통해서(여기서 ‘선하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어찌 참된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과연 성령님에 의해서 거듭난 사람들일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 야고보는 구원하는 믿음이란 항상 선한 일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믿음은 단지 “죽은” 믿음과 “헛된” 믿음일 뿐입니다(17,20절).


 

선한 일은 참된 신자의 생명 속에 계신 성령님의 임재와 활동에 의해서 솟아납니다. 요한복음 15장 2,5,8절 그리고 16절, 이 모두는 신령한 열매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어느 정도 때가 되면 영적인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슬프게도, 참된 신자라 해도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날지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그리스도인이 그 생애 가운데 지속적으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에 순복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추구한다.

요한일서 2장 3절에 따르면, 주 예수님께 대한 순종은 구원받는 믿음의 실재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이와는 반면에 4절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믿음을 가진 증거가 없는 사람이며, 더군다나 “(누구든지)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기를 거절하면서 하나님을 믿노라 주장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만일 당신의 믿음이 참된 것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원할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지키다’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깨어 경성하는 순종’, 또는 ‘예의주시하는 순종’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순종은 외적인 압력의 결과로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마치 지켜 보호해야 하는 귀한 보석으로 여기듯이 열심을 다하는 순종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사랑에 의해서 감화를 받은 순종으로, 요한은 이에 대해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고 말했습니다.


 

A.W. 토저(Tozer)는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께 대한 우리의 헌신만이 우리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 외에 달리 증명할 방법은 없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다만 가짜 믿음일 뿐이다.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면 전쟁터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고백은 하면서도, 주님으로서 그분께 대한 절대적인 순복의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합당치 않으며, 그러한 믿음은 반드시 그 믿음에 따르는 대가나 희생을 거부하게 된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참된 믿음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강력하게 증명하는 증거이다.”

-‘사람: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에서 인용.


 

참된 그리스도인은 거룩에 대한 갈망(hunger)이 있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인은 죄를 미워하고, 죄짓기를 두려워하며,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2장 29절은 이에 대해서 “너희가 주의 의로우심을 안다면, 삶 속에서 의를 행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인 줄을 알 것이다”(JND 참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케네쓰 웨스트(Kenneth Wuest)는 요한일서 3장 3-6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는데, 이 부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이 소망을 주님께 두는 사람은 모두가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가 또한 습관적으로 불법을 행합니다. 하지만 죄는 불법입니다.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지속적으로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 주님을 뵌 일이 없고, 또한 주님을 안 적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약, 확대역 성경(Expanded Translation)에서 인용함.


 

헬라어 ‘아노마이(anomai)’라는 단어는 '불법'으로 번역되었는데 문자적으로는 ‘법이 없는’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삶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비도덕적이고, 경건치 않으며,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율법과는 반대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은 참된 신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이 죄없는 완전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서신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18)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여기서 어떤 사람의 죄를 짓는 횟수, 기간, 정도를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에게 져서 죄를 짓기도 하며, 슬프게도 때때로  이런 삶을 꽤 오랜 세월 동안 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가증스런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여기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또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 마음의 반응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있는 시험(test)은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며 또 그 사랑의 목표는 무엇인가? 과연 죄인가 아니면 의(義)인가?’ 만일 당신이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 죄라면, 그렇다면 당신은 마귀에게 속한 자이고, 또한 마귀의 자녀(요일 3:8,10)입니다. 만일 당신이 의를 사랑하고, 의를 행하기를 힘쓴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입니다(요일 2:2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이 중요한 본문을 통해서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한 범죄치 아니할 것이라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결한 삶은 주 예수님의 인격적인 거룩함 속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 11:16) 우리가 순간 순간 주님과의 사귐 속에서 사노라면,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죄가 너희를(우리를) 주관치 못”(롬 6:14)할 것입니다. 주님은 참된 신자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이 일은 신자의 죄악된 본성을 제거하심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이 죄에 굴복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심으로써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은 바로 참된 신자의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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