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의미 / J.B. Watson

what heaven means to me

 

 

천국의 의미

What Heaven Means to Me

 


J.B. 왓슨(J.B. Watson)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였고,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보좌를 보았습니다. 천국은 완전한 통치의 영역이며 또한 모든 복락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곳이고, 영원한 안전이 보장된 곳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며 제자들이 올리는 기도의 여러 성취 가운데 하나로,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우주적인 법칙이 되는 장소임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그 복된 통치자의 은혜가 넘치고 그에게 순복하는 심령 속에 지복(至福)이 가득하며, 모든 천국의 거주자들의 마음에 평온이 깃드는 곳입니다.

 

  그 도성의 문 가까이 가본 리차드 후커(Richard Hooker)는 “그 질서의 세상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교회 정치(Ecclesiastical Polity)라는 책의 저자인데, 그 책에서 그는 천국의 복락은 그 통치의 탁월한 완전성에 있다고 썼습니다.


 

우리 영혼의 집

  우리 주님은 그곳을 가리켜 “아버지 집”(요 14:2)이라고 불렀는데, 아버지 집이란 곧 자녀들의 가정을 가리킵니다. “가정(Home)”은 영어 표현 가운데 매우 애정이 가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정을 향하게 됩니다. 바늘이 늘 극점을 향하듯 밤이 되면 우리 마음도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집안 식구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이해해주고, 우리를 기쁜 마음으로 섬겨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가족입니다.

냉혹한 세상에서 힘겹게 싸운 후, 마음에 위안을 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사랑에 겨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날의 소음과 먼지를 다 통과하는 그 때, 천국은 신자들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영광, 그 자체보다는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고후 5:8)이 우리의 진정한 평안입니다. 어두운 흑암의 나라 미얀마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수백번의 영적인 전투를 치렀던 백전노장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은 마지막 숨을 거둘 순간이 다가오자, “저는 지금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한 건강을 누리는 장소

  “성도의 영원한 안식”이라는 책을 쓴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는, 생애 마지막 질병을 앓는 동안 그 몸이 많이 쇠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실한 종 중의 신실한 종이었으며, 가장 부지런한 목자였습니다.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나즈막이 “저는 너무도…만족스럽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천국은 참으로 성도에게 영원한 안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더 이상 우리 몸은 연약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몸은 주님을 섬기기 위한 능력에 있어서 현재와 같은 극심한 몸의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며, 구속받은 우리 영의 활동에 있어서도 방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영광스러운 구속에 참여한 몸은 우리 자신을 표현하게 될 영혼의 그릇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더 이상 옛것이 없으며,

시간도, 나이도, 서서히 낡아지고, 또 사라지는 일도 없으리.

눈이 침침해지는 일도, 마음이 냉담해지는 일도 없고,

모든 고통, 모든 죽음, 모든 한숨이 다 사라지고 없으리.”


 

더 많은 섬김의 장소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계 22:3)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성취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현재 받고 있는 제자훈련에 대한 유일하고도 만족스러운 설명은 장래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집행자요 수행자가 되기 위해 여기 이 땅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눅 19:17)는 말씀은 이 땅에서의 삶 가운데 여러 기회들을 자신의 인격과 능력을 개발해온 신실한 종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열 고을, 또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가 천년왕국 시대에 주어지는 상급이라고 한다면, 즉시 의문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천년의 기간 동안 누렸던 그 복된 섬김이 영원한 시대에는 그치게 된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어라 하늘 영역에도

여전히 사랑의 직분 있으며,

또 다른 기쁨의 사역이 있음이로다

기록되었으되 그곳에서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리라 하였음이라”


 

방해없는 예배의 장소

  이 땅에서 우리가 둘이나 셋이 모이면, 그 가운데는 불협화음이나 미워함 또는 연약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찬송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위대한 대제사장의 너그러운 포용심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도무지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거룩한 순간조차도 마음은 엉성하고, 생각은 둔하며, 기억은 쇠미해지고, 이 세상 일로 정신이 산만해집니다. 우리가 몰두하며 드리는 예배 가운데서도 우리가 주님을 뵙는 경험은 극히 드물게 나타납니다. 조율되지 않은 음조로 인해 찬양이 망쳐지고, 우리 심령의 냉담함으로 인해 감사의 분위기가 깨어집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빈손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의 가련한 예배가 열납됨으로써 우리를 격려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다함없는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드려질 예배는 얼마나 다를까요! 어떠한 찬양이 올려질까요! 정결하고, 흠 없고, 충만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드려질 예배를 생각하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선율입니까!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예수의 이름에 곡조를 맞추고

자신의 공로를 잊고서

홀로 예수의 공덕을 기리는도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그 아름다운 땅에 대해서 “그들이 들어가도록 문이 막 열렸을 때, 나는 천성의 장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보라, 성 전체가 해처럼 빛나고 있었고, 거리는 금으로 포장되었으며, 그 금으로 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있었고, 그 손에는 종려나무를 들고 있기도 했으며, 또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날개를 가진 자들도 있어서, 서로 끊임없이 화답하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하며 찬미를 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속히 그들 가운데 있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린 환상(vision)의 장소

  그곳에서 우리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뵙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우리 영혼의 내적인 비전을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천국의 그 영광스러운 광경(glory-vision)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똑바로 바라볼 것입니다. 지금은 천국의 어두운 윤곽만 희미하게 더듬으며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고전 13:12)입니다.

 

  그 천국에서 성도들을 기다리는 것은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와 풍성입니다! 더욱 아는 것에서 자라가는 것 이상이요, 능력의 발전 그 이상이며, 그 환경에 적합하도록 온전케 되는 것 이상인 것입니다. 곧 오래 갈망해온 완성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계 22:4)

사무엘 러더퍼드(Samuel Rutherford)는 어두컴컴한 아버딘 감옥에서 곧 들어갈 영광스러운 천국을 바라보며 기쁨에 넘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린양이 임마누엘 땅의 영광 자체이시다”

이 현재 세상의 그림자가 가고, 천국의 영광의 광채가 빛을 발하게 될 때, 하늘 본향으로 향하는 영혼의 길이 환하게 비칠 때, “수가성의 그 남자! 아, 수가성 우물 곁에 있던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다!”고 J.G. 벨렛(J.G. Bellett)은 외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을 희미하게 보고 있습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요일 3:2). 이 주제에 대해 성경은 엄중하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신자라 할지라도 그 손에 쥐어주신 열쇠로 천국의 창문을 통해 들여다볼 때, 매우 분명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적이고,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시며, 우리가 그곳에서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의 삶에 대한 내 지식 부족하고,

내 믿음의 눈은 흐릿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 아시고,

내가 주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만족한다네!”


  우리는 천국에서 그 고통스러운 갈보리에 대한 생각을 아주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보좌에 앉도록 하기 위해서 기꺼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골고다 고통의 깊이만큼 영광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