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당신에게 광야와 같습니까? / Robert Lee

Is the lord a wilderness to you?

 

주님은 참으로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로버트 리(Robert Lee)

 예레미야 2장에 기록된, 마음이 따뜻했던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여호와의 메시지 가운데 첫 번째 부분에는 의미심장한 질문들이 여럿 있습니다.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5절), “말하지 아니하였도다”(6절), “제사장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8절),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11절),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14절),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17절),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18절) 등등이 그런 질문들인데, 전체적으로는 이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서 그들이 처한 상태를 성찰하도록 연속적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31절)는 물음과 같이 직접적이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 그 구속함을 받은 자기 백성들에게 광야가 되다니요!?

 

 우리는 반복적으로 기술된 그 거룩한 기록을 통해서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와 같은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길을 방랑하며 걸어야만 했던 황량한 사막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광야란 어느 누구도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장소입니다. 만국의 보배이며, 그 전체가 사랑스러운 분이시며, 만 사람 위에 뛰어난 분이신 주님이 그토록 매력이 없어지고, 바라지 않는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사실입니다.

 

 은혜 가운데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우리 주님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그 완성된 사역에 대한 인식과 지각이 점차로 커져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뢰하는 일은 곧 “주님을 기뻐하는 것”(시 37:3)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놀라운 제안이 그곳에 있습니다. “의뢰하고”, 그리고 나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나서 “의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의뢰한 후에는 반드시 “선을 행하는” 일이 뒤따라야 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주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영어개역성경 참조).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시고 미쁘심을 묵상함으로 나의 영혼을 살찌울 때, 나는 곧 “주님을 기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를 광야처럼 생각하는 일에 대해 작별을 고하는 일입니다. 이제 광야는 기쁨의 동산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은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이 광야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서글픈 관계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안전을 상징하는 피를 통해 구속을 받았고, 해방을 상징하는 홍해를 건넜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유업을 상징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할 의무와 이에 필요한 의식적인 일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주님의 성소에서조차도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놓친 무의미한 형식주의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으름이 그 광야생활의 모체였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고,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성경을 읽는 일도 부족하고, 읽고자 하는 마음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성경을 읽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게을러진다면, 우리는 더욱 향방없이 떠돌게 됩니다. 성경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에 헌신하지 못하고 게을리 할수록 개인 기도 시간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러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광야와 같이 되시는 것입니다. 다만 메마르고, 아무런 매력도 주지 못하는, 곧 물기없는 무미건조한 땅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또다시 꽃을 피우는 동산이 될 수 있습니다. 광야와 황량한 땅도 기쁨의 장소가 되고, 사막도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며, 기쁨을 주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타울러 박사(Dr. Tauler)는 우리 주와 구주가 되신 주님께 올리는 기도로써 합당한 시 한편을 지었습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찔레 덤불 속에 피어난 장미꽃같이

참 아름다고 상쾌하여라

얽히고 설킨 덤불 속,

가시로 덮인 그 속에 피었네. 

해바라기 해를 따라 돌듯이

충성스러운 믿음과 마음으로

내 영혼이 사랑하는 주님을 따르리라 

-오 주님, 나로 그러한 자를 삼으소서.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복된 실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