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그리스도인 / John Wesley

The Almost Christian

 

거의 그리스도인(The Almost Christian)[1741.7.25]

1741년 7월 25일
옥스포드 聖 마리아 교회에서 옥스포드 대학 교수 및 학생들에게 행한 설교

행 26:28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그 정도[거의 그리스도인의 정도]까지 가는 사람들이 사실 많다. 기독교가 세상에 시작된 이래로, 어느 시대에나 어느 민족에나 “그리스도인이 거의 되도록 설득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왔다. 그러나 단지 그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알기에, 다음을 심사숙고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첫째로, 거의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말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
둘째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말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가..


I.1. ‘거의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에는 첫째로 ‘기독교 바깥에서 말하는 정직성’(heathen honesty)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서 의미하는 기독교 바깥에서 말하는 정직성이라는 것은 비기독교적 철학자들의 저술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정직성이 아니라, 보통 기독교 바깥의 사람들이 상호간에 상대방에게 기대하며 또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바의 그런 정직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정직성의 규칙에 따라 그들은 이렇게 교육받는다: 불공평하지 말 것, 강도든지 절도든지 이웃의 물건에 손대지 말 것,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지 말 것, 누구에 대해서도 착취하지 말 것, 어떤 상거래에 있어서든 가난한 자나 또는 부유한 자나 간에 속이거나 지나치게 값을 받지 말 것, 누구에게서든지 그의 권리를 빼앗지 말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누구에게든지 어떤 빚이든지 지지 말 것.

2. 다시 말하여 [이 정직성이라는 것은], 기독교 바깥의 보통 사람들도 어느 정도로는 진리와 공의를 존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도 거짓을 숨기기 위하여 神을 증인으로까지 부르면서 위증하는 사람을 혐오했을 뿐만 아니라, 이웃을 무고하게 비방하고 중상하는 자를 혐오했던 것이다. 또한 어떤 종류든지 간에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을 인류의 수치거리요, 사회의 기생충으로 여겼던 것이다.

3. 또 다시 말해서 [이 정직성이라는 것은], 그들도 상호 간에 일종의 사랑과 조력을 기대하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그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나를 도울 수 있다면 어떤 도움이라도 나에게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확대하여, 비용이 들지 않거나 노력이 들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사소하게 인정을 베푸는 일들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는 음식이 있으면 굶는 자를 먹이며, 남는 옷으로 헐벗은 자를 입히며, 일반적으로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거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에 포함되는 첫 번째의 것으로서 기독교 바깥의 정직성이라는 것은 (가장 낮은 의미의 정직성을 보더라도) 이 정도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4. '거의 그리스도인’에 포함되는 두 번째의 것은 경건의 외양,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지라고 권하는 바 그 경건의 단지 외양을 갖는 것,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겉모양만을 갖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거의 그리스도인’은 복음이 금하는 것을 어떤 것도 행하지 않는다(마 5:17-7:29 참조).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다. 그는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다. 그는 전혀 맹세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말은 “예할 때는 예”요, “아니요 할 때에는 아니요”이다. 그는 주일을 어기지 않으며, 그의 문 안에 있는 객이라도 주일 어기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다. 그는 행동으로 행하는 모든 간음과 혼외정사와 음난한 것을 피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지향하는 경향성이 있는 모든 말이나 모양을 피한다. 또한 모든 쓸데 없는 말들을 피한다: 남을 욕하는 것, 남이 없는 데서 험담하는 것, 남에 관한 소문을 여기저기 퍼뜨리는 것, 독설을 입에 담는 것, ‘어리석고 실없는 농담과 익살’(eutrapelia) - 이것을 기독교 바깥의 도덕가는 일종의 덕목으로 간주하였지만 - 이 모든 것을 멀리 한다. 간단히 말하여, ‘덕을 세우는데’ 소용이 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은 바 그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엡 4:29 참조) 모든 언사를 피한다.

5. 그는 ‘술 취하지 아니하며’(엡 5:18). 
주연을 베풀고 흥청거리는 일과 탐식하는 일을 멀리한다. 그는 가능한 한 모든 다툼과 언쟁을 피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한다(롬 12:18 참조).


남에게서 해를 입는 경우에도, 그는 복수하지 않는다. 즉,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그는 이웃의 실수나 인간적 한계에서 오는 결함에 대하여 불평스럽게 욕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큰소리로 야단치지 않으며, 조소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누구에게도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거나, 해롭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일에 있어서 “남이 너에게 행하는 것을 네가 원치 않는 그 모든 일을 너도 그에게 행하지 말라”. 는 평범한 준칙을 따라 행동도 하고 말도 한다.

6. 그는 선을 행할 때, 값싸고 손쉽게 인정 베푸는 정도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다하여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애쓰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 일이 그의 친구들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그의 적들을 위한 것이든, 또는 악한 자들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선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든 상관없이, 수고와 고통도 불구하고 ‘그의 손이 할 일을 찾는 대로 어떤 일이든지 힘써 행한다’(전 9:10).


이 일이든지 다른 일이든지 간에 게으르지 아니 하며, 선을 행할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영혼과 육신을 모두 위하여, 모든 종류의 선을 행한다.
그는 근성이 악한 자들을 훈계하며,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며, 흔들리는 자들을 굳세게 하며, 선한 자들을 격려하며,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로한다. 그는 잠자는 자들을 깨우기 위하여 수고하며, 하나님께서 이미 깨우신 바의 사람들은 죄와 불결을 씻도록 열려 있는 그 샘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씻고 깨끗해지도록 돕는 일에 힘쓰고 애쓴다. 그리고 믿음을 통하여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북돋우어 범사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드높이도록 하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7. 경건의 외양을 가진 그는 또한 은혜의 수단을 활용한다. 그것도 모든 은혜의 수단을 모든 기회마다 활용한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한결같이 출입하며, 그것도 다음과 같은 사람들처럼 하지 않는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금과 값비싼 의복으로 치장하거나 지나치게 꾸민 야한 복장을 입고 와서,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예절로써 상호간에 인사하거나, 건방질 정도로 쾌활한 행동거지로써 아예 경건의 능력은 물론 경건의 외양조차도 있는 체 하기를 거부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들 가운데는 이런 비난을 들을 만한 사람이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 즉, 하나님의 집에 들어 올 때, 주변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거나 또는 지극히 맥풀리고 무성의한 태도로 무관심을 드러내는 모든 외양을 하고 들어와서, 때로는 곧 시작할 예배 위에 축복하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경외를 느끼게 하는 그런 예배 중에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잠들기에 가장 편안한 자세로 몸을 기대고 있거나 한다. 또는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잠들어 계신 것으로 간주하듯이, 서로 잡담을 하거나, 예배에 완전히 관심이 없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경건의 외양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경건의 외양만을 가진 사람들이란 경외를 느끼게 하는 그런 예배의 매 순서 마다 주의를 기울이며 진지하게 행동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성만찬을 받기 위하여 앞으로 나갈 때에는 더욱 특별히 경솔하게나 무성의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외양의 풍기는 분위기나 몸가짐이나 행동 모두가 오로지 ‘하나님, 죄인인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8. 이러한 경건의 외양에 다음의 것들을 더 포함시킬 수 있다: 가장이 주도하여 가족기도회를 한결같이 드리는 것, 개인기도 시간을 따로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 매일같이 행동거지를 성실하게 하는 것 - 이런 외적인 종교를 한결같이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경건의 외양을 가진 사람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거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고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이 바로 진실성(sincerity)이란 것이다.

9. 진실성이란 말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위에 말한 그런 외적 행동들이 흘러나오는 바의 종교의 진정한 내적 원칙(a real, inward principle of religion)이다.

만약 이것이 [속에] 없다면, ‘기독교 바깥의 정직성’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어느 기독교 바깥의 에피큐리안 시인의 요구에 조차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 가엾은 자 조차도, 그가 정신이 가끔 멀쩡할 때에는, 이렇게 증언하였던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덕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하고
악한 사람들은 처벌이 무서워서 죄를 피한다.

그러므로 만약 누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만 악행을 멀리 한다면,
너는 교수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 비기독교인 시인은 말하고 있다 - 즉, ‘너는 네 상을 받아라’. 그러나 그 시인조차도 이런 식으로 악을 행치 않는 사람을 ‘선한 비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동기에서(즉,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하여, 또는 그의 이익이나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하여) 악행을 멀리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선행을 한다면, 아니 모든 은혜의 수단을 다 활용한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을 ‘거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그의 마음 속에 보다 나은 어떤 원칙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온전히 위선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0. 그러므로 진실성이라는 것은 ‘거의 그리스도인’이란 말에 필연적으로 포함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이 경우에 진실성은 이런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a real design to serve God, a hearty desire to do his will). 그러므로 반드시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즉 그의 모든 대화, 행동, 행하는 일에 있어서나 행하지 않는 일에 있어서나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진실한 생각을 갖는다. 이러한 진실한 생각은, 만약 그가 ‘거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생활 전반에 걸쳐 흐른다. 이것이 그가 선을 행할 때나 악을 피할 때나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들을 활용할 때나 원동력이 되는 원칙이다..

11. 그러나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어떤 살아 있는 사람이 이 정도에 도달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거의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온전히 그리스도인’(a Christian altogether)이라 하는 것에는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나는 대답한다: 첫째로 그 정도에까지 이르고도 아직도 ‘거의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뿐만 아니라, 분명한 경험적 증거를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12. 형제들이여,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내가 여러분들을 향하여 하는 말이 대담하게 들릴 것이요’(고후 7:4 참조).  그러니 내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내 자신의 [과거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더라도, ‘나의 이 잘 못을 용서하고 들어 주시오’(고후 12:13). 마치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듯이 나 자신에 대하여 거침없이 말하더라도 용서하고 들어 주시오. 나는 여러분들이 높아지도록 내 자신이 낮아지는 것으로 만족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는 더욱 수치스럽게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13.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증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나는 수년 동안 그 정도에까지[거의 그리스도인의 정도에까지] 도달하였었다.

모든 악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고 깨끗한 양심을 갖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였고, 시간을 아껴 썼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선을 행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다 활용하였다. 모든 공적인 그리고 모든 사적인 은혜의 수단을 한결같이 그리고 조심스럽게 활용하였다.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행동을 한결같이 진실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리고 내가 그 앞에 서있는 바의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거니와, 이 모든 일을 나는 진실성(sincerity)로써 행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과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선한 싸움을 싸우라’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딤전 6:12)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써 그 모든 일들을 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에게 증거하거니와(롬 9:2 참조). 이렇게 하는 동안 내내 나는 ‘거의 그리스도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II. 그러면 ‘온전히 그리스도인’(altogether a Christian)이라 하는 것에는 이런 것 이외에 무엇이 더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나의 대답은 이렇다:


1.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the love of God)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사랑이란 우리의 마음 전체를 사로잡는 그런 사랑이요, 우리의 모든 정감을 사로잡는 그런 사랑이요, 우리 영혼의 수용능력 전체를 가득 채우는 그런 사랑이요, 우리 영혼의 모든 기능의 최대 역량을 다 동원하여 발휘하게 하는 그런 사랑이다.
 

주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자, 그의 영은 하나님 그의 구원자 안에서 한결같이 기뻐한다. 그의 즐거움은 그의 주님 안에 있다. 그의 모든 것인 그의 주님에게 있다. 그 주님에게 그는 범사에 감사를 드린다. 그의 소원은 오로지 하나님을 향하여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에 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외치기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 73:25)라고 한다. 실로 하나님 이외에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 세상도 아니요, 이 세상의 어떤 무엇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이 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이다”(갈 6:14 참조). 그는 육신의 욕망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요일 2:16 참조).

그렇다. 그는 모든 종류의 교만에 대하여 죽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랑하지 않기”. 고전 13:4. 때문이다.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는’ 그는 그 자신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보다 더 작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2. ‘온전히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것에 포함되는 두 번째의 것은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누가 묻기를 ‘누가 나의 이웃이요?’라고 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즉 모든 육체의 영의 아버지이신 그 분의 모든 자녀’가 우리의 이웃이라고 우리는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들이나 또는 하나님과 그들 자신의 영혼에 대한 원수들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제외하지 않는다. 모든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

이것이 어떤 사랑인가를 보다 충분히 이해한 그는 사도 바울이 사랑에 대하여 묘사한 것에(고전 13:4-7)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경솔하게나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사랑을 행하는 그 자신을 가장 작은 자, 모든 사람의 종으로 만든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이 된다’(고전 9:22).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오로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이 구원받도록 한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 한다. 사랑은 분노를 내던져 버린다. 분노를 가진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3. ‘온전히 그리스도인’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앞의 두 가지와 실제로는 구분할 수없으나, 구분하여 고찰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이 사실은 앞의 두 가지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인 바, 즉 믿음이다. 이 믿음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 전반에 걸쳐서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 말씀되어 있다. 사랑받았던 제자 요한은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다”(요일 5:1)라고 말한다. “그를[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그리고,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요일 5:4). 그렇다, 우리 주님 자신이 이렇게 선언하셨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요 3:36). 그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4. 그러나 여기서 누구도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다음의 내용을 열심히 주지하여야 할 것이다. 즉, 회개와 사랑과 온갖 선행을 초래하지 않는 믿음은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요 마귀의 믿음’일 뿐이다. 왜냐하면 마귀들도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서 나신 사실과 그리스도가 온갖 기적을 일으킨 것과 그리스도가 그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 것과 그가 우리 때문에 우리를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죽으신 것과 그가 삼일만에 다시 사신 것과 그가 승천하사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것과 세상 끝날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마귀들도 믿으며, 그들도 이 모든 내용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아무리 있을지라도 마귀는 여전히 마귀일 뿐인 것이다. 그들은 바로 진정한 기독교적 믿음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저주받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5. ‘올바르고 진정한 기독교적 믿음’이란 (우리 교회의 교리적인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성경과 우리 믿음의 신조들이 진리라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정죄로부터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되었다는 확실한 신뢰와 확신을 갖는 것이다’ - 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하여 나의 죄들이 이미 용서되었고 그리하여 내가 하나님의 총애에로 다시 화해되었다는 내용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갖는 확실한 신뢰와 확신이다 -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여 따르고자 하는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이 결과된다.

 

6. ‘그의 마음을 정화하는’ 이 믿음을 가진 자는 누구나, 그 마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이 믿음이 그의 마음을 교만, 분노, 욕망, 모든 불의, 육과 영의 모든 불결함으로부터 정화한다. 그리고 이 믿음이 그의 마음을 하나님과 모든 인간에 대한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운다. 즉,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물건을] 쓰는 것과 또 내가 쓰여지는 것을 영광으로 알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랑,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치욕, 즉,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는 조롱과 멸시와 증오를 기쁨으로 인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혜로써 허락하신 바 사람이나 마귀가 가하는 악한 일들을 인내하는 사랑, 이런 사랑으로 그 마음을 충만하게 채운다. 이렇게 ‘사랑으로 역사하는’(갈 5:6)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단지 ‘거의’(almost)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온전히’(altogether)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7. 그러나 누가 이러한 내용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살아 있는 증인들이란 말인가? 형제들이여,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잠 15:11)하는 그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심중에 이렇게 물어 보기를 나는 바랍니다: ‘나는 그 살아 있는 증인 가운데 들 수 있는가? 나는 비기독교인들의 정직성의 준칙들이 요구하는 그 만큼 정의와 자비와 진리를 행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외양’이 내게 있는가? 즉, 경건의 모양이 내게 있는가? 나는 악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모든 것을 다 멀리하는가? 내 손이 찾아 행할 수 있는 모든 선을 나는 힘써 행하는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모두 진지하게 활용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도와 염원으로 행하는가?

 

8.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도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않는가? 즉, 나는 ‘거의 그리스도인’도 못되는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가? 나는 비기독교적 정직성의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가? 또는 적어도 기독교적 경건의 모양에도 도달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가? 당신 안에 진실성(sincerity), 즉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를 하나님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말과 행동, 사업, 연구, 기분전환 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고자 하는 의도조차가 없었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골 3:17) 행해져야 한다는, 그래서 그런 만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영적 제물'(벧전 2:5)이 되어야 한다는 의도나 염원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한 의도나 선한 염원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 선한 의도나 선한 염원이 선한 결과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누군가 말하기를, ‘지옥의 길은 선한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다’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도[즉,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실현된 다음에도] 가장 중요한 질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의 마음에 충만히 부은 바 되었는가? ‘나의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가? 오로지 하나님만을 사모하는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가? 하나님이 너의 영광이요, 즐거움이요, 기쁨의 면류관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하는 계명이 너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가?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가, 너의 원수도,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도 너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는가? 그리스도가 너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가?


그리스도가 바로 너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너를 위하여 그 자신을 내어주셨다고 하는 것을 믿는가?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의 어린양이 바로 너의 죄들을 가져가셨고 그 죄들을 마치 바다의 심연 속에 돌을 던지듯이 던져버린 것을 믿는가? 그리스도가 바로 너를 대적하는 문서를 도말하여 가져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것을 믿는가? 바로 네 자신이 그의 피를 통하여 구속을 얻었는가, 바로 네 자신의 죄들이 용서됨을 받았는가? 그리고 그의 영이 바로 너의 영과 더불어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시는가?


1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오 지금 우리 가운데 서 계신 하나님이 아시는 대로, 이 믿음과 이러한 사랑이 없이 죽는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좋았을 것이다. 잠자는 너여, 잠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너의 하나님을 부르라. 그를 찾을 만한 낮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이 ‘그의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주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시기’(출 33:19)까지 하나님을 찾아 부르라. 주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시기까지, 즉 “주님, 주 하나님,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출 34:6-7) 그 주님의 이름을 반포하실 때까지 그 하나님을 부르라. 어떤 누구도 헛된 말로 너를 설득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빌 3:14)을 받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있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신’(롬 5:6) 그분을 밤낮 부르라. 그리하면 네가 누구를 믿고 그렇게 불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요 20:28. 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지 이것을 기억하라: 너도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 분을 향하여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거니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십니다’(요 21:17)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눅 18:1)이다.


11. 우리 모두가 ‘거의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여,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칭의를 받고(롬 3:2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을 알며(롬 5: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 가운데 기뻐하며(롬 5:2),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져 충만한 가운데(롬 5:5),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우리 모두가 체험하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