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한 단상 / C.H. Mackintosh

A Fragment of Worship

C.H. Mackintosh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giving thanks to His name)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며, 기뻐 받으시는 예배의 참된 성격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의 지속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예배의 원천이 되셔야 하며,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한 항상 그리하실 것입니다.

  아,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에 미치지 못하는지요! 우리 마음이 정직하다면 그렇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모임의 예배나, 혹은 개인 예배에 있어서, 그 음색은 얼마나 저조하며, 그 영은 얼마나 무디고 암울한지요! 우리는 그리스도 대신에 오히려 자아로 가득해 있습니다. 성령님은 당신 자신의 일, 곧 그리스도의 것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를 받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배는 자기 정죄 상태에서 우리 자신들의 것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방식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마음을 깊은 비탄에 빠지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공적예배나 개인 예배에 있어서, 또는 교회적인 차원에서와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째서 우리의 공적예배는 그토록 자주 침울에 빠지는 것일까요? 우리의 예배는 어째서 그토록 미력하고, 어째서 그토록 황무하고, 어째서 그토록 헤매고 다니는 듯한 예배로 마치게 되는 것인가요? 어째서 우리의 찬송이나 기도는 예배의 흐름과 상관없이 이것 저것, 되는대로 하게 되는 것입니까?

  어째서 예배라고 하는 이름(역자주: 예배의 Worship은 '가치가 있다(worth)'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음)에 합당하지 못한 채로 마치게 되는 것일까요? 어째서 우리의 예배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것이 그토록 부족한 것일까요? 왜 우리의 예배는 주님께서 "그 소제의 고운 기름 가루 한 움큼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레 6:15)는 예배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 그토록 적을까요?

  우리는 예배시에 너무 자아와 그 부산물인 우리의 욕심, 우리의 연약,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 그리고 우리가 처한 어려움들로 가득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념물로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는 예배없이 그저 하나님을 떠나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실상 하나님에게서 그분의 마땅한 권리이며, 그분이 진정 바라시고 기대하시는 예배를 도적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세무궁토록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우리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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